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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기사승인 2022.01.06  15: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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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필드(Schofield) 박사의 한국사랑 이야기.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특별하다. 호랑이(虎) 해, 그것도 검은 호랑이(黑虎)해란다. 아울러,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서린다. 진정한 호랑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남해안의 일출/사진: 김영찬 씨 제공)

필자는 잠을 설치다가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石虎弼, 1889-1970) 박사의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김승태, 유진, 이항 엮음)을 읽었다.

스코필드, 그는 누구인가.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다. 그는 캐나다로 돌아갔다가 1958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1968년 3월 1일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1969년 초부터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병상에서도 한국인들의 장래를 걱정했다. 특히, 그는 한국 이름 석호필(石虎弼)을 좋아했다. 그 발음이 스코필드와 비슷할 뿐 아니라, 철석같은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돌석(石), 호랑이 같은 무서운 사람임을 나타내는 호랑이 호(虎),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는 도울 필(弼)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 4월 12일 눈을 감았다(백과 사전 요약).

   
(책의 표지와 스코필드 박사)

‘조선의 친구여!’...한국인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

그는 수시로 신문에 글을 썼다. 1926년 9월 17일자(동아일보)에 실린 ‘조선의 친구여’는 그가 캐나다로 돌아가는 길에 쓴 편지다. 편지에는 한국에서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한국의 장래에 관해서 희망이 있다고 격려했다. 주요 내용은 ‘용기를 가지고 교육과 실천에 힘쓰며, 근검절약하고 도덕을 숭상하라’이다.

1926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보낸 ‘나의 경애하는 조선의 형제여’에는 “조선은 나의 고향과 같이 생각된다.”라고 썼다. 1931년 크리스마스에 보낸 ‘경애하는 조선 형제에게’라는 편지에도 “나는 ‘캐나다인’이라기보다 ‘조선인’이라고 생각된다.”라고 했다. 그는 서양인으로서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다른 선교사들과는 달리, 한국인을 형제로 생각하고 사랑했던 것이다.

스코필드의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해방 후에도 식지 않았다. 1945년 8월,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자 한국의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내 축하하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런 가운데서도, 뭔가 부족할 때는 거침없이 꾸짖었다.

1959년 1월 3일자(조선일보)에 기고한 “민심은 공포에 잠겨있다. 국회 의사당 앞에 무장경관이라니...”라는 글은 의사당을 무장 경관들이 포위하고, 국민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는 것을 보고서, 1919년 3․1운동 때를 회상하면서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1963년 9월 13일자(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매일 아침 나는 신문을 펼쳐보고는 분노를 느낀다. 나는 이제까지 누구 못지않게 야당의 통합을 바라왔다. 그렇건만, 들려온 소식은 정치적 이권을 위한 각 야당의 이기적인 아귀다툼뿐이다.>

그의 기고문이 오늘의 현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스코필드 박사가 그리운 이유다.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저작권자 © 한국부동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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