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는 막(幕)이 있어…사람과 사람 사이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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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 ||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에는 고양이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 중 <해변의 카프카>에서 고양이와 약간은 어눌한 노인이 대화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안녕하세요?” 나카타 노인이 고양이에게 말을 건다.
“제법 우리 고양이 말을 잘하네?” 고양이의 대답이다.
“언제든지 아무 고양이하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나카타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고양이님은 어느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군요.”
“옛날에는 분명히 나를 길러주던 주인이 있었네. 그러나, 지금은 아닐세. 근처의 몇 집에서 이따금 밥을 얻어먹고는 있지만...”
어려서부터 고양이를 많이 키운 ‘무라카미 하루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양이를 좋아했고 또 많이 키웠다. 그 내용은 수필집 <장수 고양이의 비밀>(홍은주 譯)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무라카미(村上)와 고양이에 얽힌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본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꽤 많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20년 넘게 산 고양이는 한 마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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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고양이의 비밀' 표지) | ||
이 고양이는 드디어 스물한 살이 되어 기록을 경신 중이지만, 지금은 우리 집에서 기르지 않는다. 약 9년 전 일본을 떠나며 고단샤(講談社) 출판부장 ‘도쿠시마’ 씨에게 맡겼다.>
“장편 소설을 하나 써 드릴 테니까 부디 이 아이(고양이)를 부탁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뮤즈’다. ‘와타나베 마사코’의 순정만화 <유리의 성>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아무튼, 멋진 거래가 아닌가? 고양이 ‘뮤즈’가 다른 사람의 집을 다니면서 밥을 얻어먹지 않아도 되고, 출판사는 작가의 글을 받게 됐으니... 그런데, 고양이를 맡아준 대신 받은 소설이 대박이 났다.>
수필에서 밝힌 작가의 말이다.
“고양이와 교환’해서 쓴 장편이 결과적으로 내 책 중에서 제일 많이 팔린 <노르웨이의 숲(한국판: 상실의 시대)>이었으니 녀석을 ‘복덩이 고양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무라카미 씨는 해외에서 돌아온 후 이 고양이를 보러 가끔씩 도쿠시마 씨의 집에 갔다.
<인간으로 따지면 백 살을 넘긴 셈이니 아무래도 체력이 쇠했다. 체중도 훌쩍 줄었다. 대략 한창 때의 절반밖에 안 되는 듯싶다. 다리와 허리도 옛날 같지 않다. 마당에도 거의 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놀랄 만큼 윤기가 나고, 눈과 치아도 생각보다 말짱하며 식욕도 건재하다. 가져간 양갱을 내밀었더니 달려들어 할짝 할짝 먹어 치웠다.>
그러면서 작가는 젊은 시절 함께 했던 고양이 ‘뮤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일이 끝나면 한밤중에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소설을 쓰던 나날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고양이는 내가 소설을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걸핏하면 책상 위의 원고지를 짓밟았다.>
<고양이란 보통 사람의 눈을 피해 어두운 데서 새끼를 낳는 법이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반드시 밝은 데서 그것도 내 앞에서 새끼를 낳았다. 서서히 진통이 찾아와 산기를 느끼면 ‘야옹 야옹’ 울면서 다가와 내 무릎에 기댄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 별수없이 ‘그래, 그래’하면서 고양이의 앞발을 잡아준다. 그러면 고양이는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내 손을 꾸욱 누른다. 그러는 사이 ‘씰룩씰룩’이 시작되어 다리 사이에서 새까맣게 젖은 태아가 꼬물꼬물 고개를 내민다.>
무라카미 씨는 고양이가 30분 간격으로 5마리의 새끼를 낳는 동안 무척 피곤했지만, 정성을 다해서 산파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어둠 속에서 조명탄이 올라가듯이 그 고양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고, 기쁨이 있고,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하지만 고양이는 출산이 끝나면 다시 수수께끼 가득한 고양이로 돌아간단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 막이 끼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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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작가가 키웠던 고양이와 같은 종인 '샴고양이'의 이미지) | ||
<한 가족으로 사이 좋게 같이 살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幕) 같은 것이 한 겹 끼어 있었다. 기분 내키면 응석을 부리긴 해도 ’나는 고양이, 당신들은 인간!’이라는 선(線)이 그어져 있었다. 특히 이 고양이는 머리가 좋은 만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면이 컸다.>
8년만에 해외에서 돌아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심정이다.
<마치 사연이 있어서 헤어졌던 옛 연인과 우연히 재회한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지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물론 고양이는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다. 주인 얼굴 따위는 곧바로 잊어버리는 게 고양이고, 뭐 그게 고양이의 장점이다.>
이것은 고양이와 사람과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비일비재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명 작가가 된 후에 불쾌한 일, 괴로운 일이 뒤따라왔고, 인간관계도 영 순탄치 않았다. 어쩌면 유명세라는 것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을 것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말이다.
“인생이란 예상치 못한 덫이 가득한 장치다. 그런 현상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총체적 균형이 아닌가 싶다. 요컨대 ‘인생에 좋은 일이 하나 생기면 다음에 반드시 좋지 않은 일 하나가 기다린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일 관련으로 무슨 좋은 일이 생기면 대신 인간관계 하나가 박살 나는 식이다. ‘사랑’이 하나 태어나면 ‘미움’도 하나 태어난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통해서 느낀 삶의 법칙이다. 요즈음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들이 자주 일어나서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또한 인생의 덫일까?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