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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기사승인 2023.11.11  20: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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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터전을 이룬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중략)/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나태주(78) 시인의 시(詩) ‘내가 사랑하는 계절’을 되뇌며 길을 걷는다. 낙엽이 길에서 뒹굴기도 하고, 아직은 가지에 매달려 먼 길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이파리들도 많다. 아무튼, 계절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이기도 하다.

   
(사진: 아직은 아름다운 11월의 도심)

정한용(65) 시인은 ‘우리는 폭력의 세월을 견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모질고 폭력적인 세월을 견디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 ‘길 위에서’로 들어가 본다.

<먼 길도 때로는 가까워보인다/ 눈 매웁고 콧물 흘러/ 죽었던 강물들이 다시 흐른다/ 폭력의 세월을 우리는 견디어 온 것이다/ 미세하게 금간 가슴들을 껴안고/ 깨진 틈으로 새는 것이 사랑인 줄 모르고...>

‘깨진 틈으로 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가까운 서점에 들렀다. 신간들이 우아한 자태로 뽐내고 있었다.

“요즘 책 안 팔립니다.”

“출판계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렵습니다.”

필자는 평소 자주 소통하는 출판사 사장들의 말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신간 중에서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문학과지성사)을 집었다. 저자는 곽효환(56) 시인이었다.

‘아롱진 자국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손길’

   
(사진: 곽효환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곽효환은 예민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시인은 시련과 상처를 견디며 눈물짓는 사람들을 너른 마음으로 보듬는다.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은 총 68편의 시로 구성됐다. 이번 시집은 전작 ‘너는’ 이후 5년 만에 펴냈다.

시인은 시대의 곡절과 흐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주로 나열하곤 하지만, 우리의 터전을 이루어온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어진 삶과 사랑하는 타인을 지키기 위해 고통의 순간순간을 소리 없는 눈물로 버텨낸다. 이때 소리 내지 않음은 자칫 힘없고 유약한 수용처럼 보이지만, 역경의 무게와 어둠을 기꺼이 감내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단단하고 뜨겁다. 이 무명의 눈물들이야말로 진정 우리 사회를 추동해온 동력이다.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은 근현대사의 뒤꼍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을 가만히 쓸어보고, 기억하고, 되짚어보려는 문학적 시도다. 시(詩) 속으로 들어가 본다.

<노랑부리백로가 여름을 나고

도요새, 노랑지빠귀 겨울을 난 뒤

저어새 새로이 둥지를 튼

노을과 썰물이 뒤섞이는 봄 갯벌

붉게 검붉게 혹은 금빛으로 물드는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둔 적막을 본다.

 

매화 향기 남은 자리에

벚꽃 분분히 날린 다음

모가지를 떨군 동백꽃

흥건히 잠겨 흘러가는 실개울

수척한 빈산 노거수(老巨樹) 그늘에 들어

소리 없이 울다간 사람을 더듬는다.>

차단된 삶의 여로이자 단절된 역사의 현장

곽효환 시인에게 있어서 ‘소리 없이 울다 간’ 존재들을 조명하는 일은 차단된 삶의 여로이고 단절된 역사의 현장이며, 잊혀가는 오래된 정감의 고향이자, 채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사진: 광화문에 운집한 유족들과 추모객들)

시집에 담긴 ‘날마다 사람이 죽는다’는 광화문이나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시인의 감성으로 독특하게 파고든다. ‘날마다 사람이 죽는다’의 시(詩)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른 아침 펼쳐 든 신문에 죽음이 가득하다/ 한 면 가득 죽은 자들의 이름이 촘촘히 나열되어 있다./ 기계공장에서, 발전소에서, 공사현장과 산업현장 곳곳에서/ 날마다 사람이 죽고 죽어간다/ 그들은 대개 비정규직이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청년들이다/ 멀리서 꿈을 품고 온 이주 노동자이다./ 상복 입은 사람들과 살아남은/ 그러나 머지않아 죽음의 명단에 오를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운다/ 끝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헛상여를 들고/ 죽은 사람들과 뒤엉켜 광장을 맴돈다.>

곽효환 시인의 말이다.

“고되고 길었던 여정의 끝이 마침내 저 너머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여정의 끝에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마도 역려(逆旅)에 들어 잠시 몸을 누이겠지만 오래지 않아 주섬주섬 다시 여장을 꾸릴 것임을. 그래왔듯이 그 길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묻고, 사유하면서 걸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저작권자 © 한국부동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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