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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빈센트 권(權)’의 애절한 사연

기사승인 2023.09.21  15: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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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2년 5월

오타 줄리아의 최종 유배지 섬의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 열 채도 되지 않는 어부들이 살고 있는 허름한 초가집이 몇 채 있을 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궁궐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천당과 지옥이었다. 그래도 줄리아는 궁궐과는 다른 풍요로움으로 가득했다.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십자가를 지고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성가 <주여 당신 종이 여기>를 부르면서 산길을 걸었다.

   
(줄리아를 기리는 전망대/ 매년 5월, 일본인들이 참배를 한다.)

이 섬의 책임자는 작은 창고 같은 비탈길 언덕에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 채를 줄리아의 숙소로 내정했다. 짐이라고 할 수 없는 작은 보따리를 푼 줄리아는 예수회 총장 클라우디오 아쿠아비바(Claudio Aquaviva) 신부에게 편지를 썼다.

“주님은 당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조선에서 태어난 저를 인도하시고자 아우구스치노(小西行長)를 통해 일본에 오게 하시고, 성스러운 계율과 당신의 소식을 알게 하시는 커다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현세의 왕국에서 받은 이전의 은총보다도 천국의 정배로서 지금은 더욱 큰 은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이 작은 섬을 갈바리아(Calvaria) 언덕(예루살렘 북쪽 교외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한 언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주 그리스도의 발아래서 일생을 마칠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줄리아는 절해고도로 유배당한 아픔을 잊고 주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과 믿음으로 살 것을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칼럼 ‘오타 줄리아의 전설적인 새로운 이야기(9월 12일)’에 이어 그동안 KBS·부산일보 등 언론에 여러 차례 공개된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타 줄리아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세례명은 빈센트(Vincent)이고, 성은 권(權)씨다. 선교사들이나 일본인들은 ‘빈센트 카운(Vincent Caun)’이라고 칭한다. 그는 3,000명의 병사를 이끄는 무관의 아들이었다.

그 역시 ‘오타 줄리아’처럼 조선을 침략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 의해 일본으로 갔다. 운명적으로.

   
(그림으로 그린 모레 혼 신부의 마지막 모습) 

그가 프랑스 모레 혼(Morejon, 1562-1639)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은 1592년 12월이며, 다음 해에 수도사 양성을 위한 초등 교육 기관에 입학했다.

1612년 중국 베이징에 파견됐고, 거기서 조선으로 들어가 포교하려던 것이지만, 입국을 하지 못하고 7년간 베이징에 머물렀다.

1919년에 마카오를 거쳐서 일본에 돌아갔다. 다시 마닐라에 파견되어 1620년에 일본에 귀국했다....

카운 빈센테 등의 순교

<카운 비센테 등 9명의 순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안 로드리게스 질란(João ‘Tçuzu’ Rodrigues. 1561-1633) 신부의 1627년 3월 24일자 서한에 따르면 빈센트 일행은 나가사키(長崎)에서의 처형을 위해 1926년 6월 18일 밤 시마바라 감옥을 출발했다. 이때 처형당하는 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신부 2명은 큰 이불로 덮인 가마에 실려 각각 2명의 남자가 이를 메었고, 수도사는 잘 묶어 마차에 실었다. 이들에게 6명의 기마병과 50여 명의 보병이 소총·활화살로 무장했다. 6월 19일 새벽 나가사키에서 약 2리 떨어진 해맞이 언덕에 도착해 이곳에서 1박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화형을 당한 니시자카 언덕이자 공원)

<나가사키 근처에 가니 마을 신도의 우두머리였던 어느 기리시탄이 길로 나와 신부들에게 차를 마시게 했다고 한다. 더욱이 일본의 관습에 따라 이별의 잔과 과일을 향응하려 했으나 관리들은 ‘그것이 수고스럽다’는 생각에 허용하지 않았다.>(遥かなる高麗/Ruiz de Medina, Juan G, 近藤出版社).

다음은 조안(João)신부의 서한을 그대로 게재한다.

“거룩한 수난자는 마침내 희생을 위해 쌓인 장작터로 데려왔습니다. 순교장 입구에서 그들은 관구장 신부에게 먼저 경례를 했습니다. 그들은 바다 쪽으로 들어가 모두 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거룩한 곳을 향해 숭배하면서 그동안 받은 은혜로 인해 순교의 길로 들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

“다량의 장작을 점화하자 처음에는 연기가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무서운 화염이 일었을 때 용감한 수난자가 보였습니다. 그들은 이토록 무서운 화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

“가끔 ‘예수님과 마리아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그것을 오래 계속하지 못하고 극히 짧은 시간 안에 그 영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점화된 후 절식할 때까지 15분을 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

“모든 것이 불에 탔을 때 성스러운 재를 배에 실어, 꽤 아름답고 가치 있는 물건을 씨앗을 뿌리듯 바닷 속에 뿌렸습니다.”

필자는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자 내일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맺는다.

<*참고 문헌 및 사진/ 야후재팬)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저작권자 © 한국부동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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