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연재소설 김유신-18

기사승인 2022.04.30  05:06:38

공유
default_news_ad1

<4부> 구층탑과 첨성대

1.

   
(김유신 장군 동상)

서기 642년 백제에 변경의 요충인 대양주의 대야성을 빼앗겼다.

“성주 김품석이 죽고, 아내인 고타소랑(古陀炤娘)도 … .”

성을 빼앗긴 것에 끝나지 않고 성주의 부부가 죽임을 당했다.

왕이 이를 듣고는 안타까워하였다.

“이를 어찌할꼬.”

성주의 아내인 고타소랑은 춘추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춘추는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는 벽에 기대어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유신과 춘추를 불렀다.

“백제의 군사가 대야성에 집결해 있어 국지전으로는 당장 탈환이 어렵사옵나이다.”

“다른 대안은 없는가?”

“백제군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고구려의 협조가 있어야 하옵나이다.”

당장 딸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는 것을 안 춘추는 고구려에 가서 청군하리라 마음먹고는 왕에게 주청하였다.

“신이 고구려에 가서 청군해 볼까 하오니 윤허해 주옵소서.”

“그대는 신라의 재상임을 잊지 말라!”

왕은 춘추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였다.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고구려에 정변이 있었다. 시월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새 왕을 옹립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하다면 고구려의 실권은 연개소문이 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청병도 그러하지만 연개소문을 직접 만나봄도 중요할 것 같았다.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하게 놔두어서는 딸의 원수를 갚지 못할 것 같았다. 이는 누굴 시켜서 될 일이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할 일이라 생각되었다.

“장수는 싸움터에서 목숨을 걸고 적과 대적하지만, 정객은 적국에 건어가 직접 사정을 살펴야 하오.”

춘추의 그러한 말에 유신도 말릴 길이 없었다.

2.

“60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기다리지 마소서.”

“공이 만약 돌아오지 못한다면 고구려의 왕궁을 짓밟아버리리라.”

유신이 손가락을 깨무니, 춘추도 그리하여 서로 맞대었다.

춘추가 훈신사간(訓信沙干)과 함께 고구려로 가는데, 대매현(代買縣) 고을 사람 두사지사간(豆斯支沙干)이 푸른 베(靑布) 3백 보(步)를 주었다.

“어디 가시든 간에 필요한 물건이 있사옵니다.”

“고맙소이다. 미처 챙기지 못한 일이오.”

적국에 가는 춘추공에게 긴히 쓰임이 있으리라며 청포 3백보를 건넸다.

고구려에 들어서니 연개소문이 춘추를 맞이하였다. 고구려의 태대대로(太大對盧)인 그는 고구려의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처음에 환대하다, 왕의 명이라 핑계되어 춘추를 가두고, 옛 고구려의 땅인 한강 이북 마목현(麻木峴)과 죽령(竹嶺)을 돌려주라 하였다. 청병을 하러 왔는데 오히려 옛 땅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것은 재상의 책무가 아니오.”

“그리하지 아니하면 재상의 귀환을 보장할 수 없소.”

춘추가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하자 죽이려는 참이었다.

곤경에 빠진 춘추가 신하 선도해(先道解)에게 가지고 왔던 청포 3백보를 뇌물로 주고는 살길을 물었다.

그가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간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해 용왕의 딸의 병에 쓸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간 거북의 이야기를 상기하오. 거북이가 토끼를 온갖 감언이설로 꼬아 용궁으로 데리고 가면서 데리고 가야하는 사연을 말하니, 사연을 들은 토끼가 간을 씻어 말리느라 두고 왔다고 하였지요. 그러니 거북이가 간을 가지고 오라고 토끼를 뭍으로 놓아준 이야기 말이오.”

춘추가 그의 말을 듣고는 연개소문에게 ‘돌아가 왕께 고하여 고구려의 옛 땅을 돌려주도록 하겠다’고 하니, 옛 땅을 돌려받을 것이라 기뻐하였다.

한편, 춘추의 귀환을 기다리던 유신은 예순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아니하자 정예군 3천을 소집하여 고구려 왕성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왕에게 고하고 정병을 사열하니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 왕경에 잠입해 있던 고구려 첩자가 이를 보고 놀라 본국에 급히 전하였다.

연개소문이 이를 접하고는, 춘추가 왕에게 고하여 옛 땅을 돌려주도록 하겠다고 하였으니, 얼쩡거리다 김유신이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낭패라 여겨 서둘러 춘추를 풀어주었다.

춘추가 돌아온다는 전갈을 접한 유신은 국경까지 나아가 춘추를 맞았다.

“무사해서 다행이오.”

춘추는 유신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심려를 끼쳤사옵니다.”

왕도 춘추의 귀환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춘추는 딸의 원한을 깊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하러 갔지만, 차지에 고구려의 실정을 어느

정도 살필 수 있었다.

가장 큰 성과는 연개소문과의 조우였다. 그를 안다는 것은 고구려의 모든 것을 아는 것과 같았다. 그는 분명히 고구려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왕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연개소문이라는 괴물이 고구려를 장악하고 있음을 직접 보게 된 것이었다. 아무리 강성해도 뇌물을 받아먹는 신하가 있는 것을 보니, 그도 완벽한 독재자는 아니었다.

3.

6부장과 왕족들로 뭉친 보수세력들이 군권을 신군부세력인 가야계를 경계하면서 대야성의 성주를 김품석으로 삼았다. 전투경험을 쌓은 장수도 아니고 지략을 가진 자도 아니어서 성주의 자질이 아니었다. 부하의 아내들을 탐해 원한을 싸고 있었다.

백제에서 이를 알고 그들과 결탁하여 성을 공략하자, 성안에 불을 지르고 성문을 열었다. 항복하면 살려주리라 여겼지만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품석의 아내인 춘추의 딸 고타소는 처소로 들이닥친 백제군을 보고는 자진을 했으나, 군사가 공을 차지하기 위해 목을 쳤다.

백제와의 분쟁의 양상을 보면 먼저 도발을 하지 않은 이상 살상을 하지 않았었다. 양국의 장수들 중에는 공을 세우거나 영지를 차지할 목적으로 도발하다 토벌 당하는 경우는 있었다.

신라군이 함부로 보복하지 못하도록 포로 된 군사를 노비로 삼고 점령지의 백성들을 인질로 삼았다. 품석과 고타소의 시신도 돌려주지 아니하고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변방의 지휘권를 김유신에게 주라!”

군권을 넘보던 귀족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유신은 당장 공략할 수도 있었지만 인질로 잡혀있는 군사와 백성들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단박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려받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김유신도 별 볼일이 없군.”

“백제군이 겁이 나긴 나는 모양이군.”

귀족들의 비난이 있어도 꾹 참고 변방의 방비를 다져나갔다.

주성은 빼앗겼지만 아직 빼앗기지 않은 성벽을 보수하고 정규군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만약 백제의 도발이 있을 시에는 후면과 측면을 공략할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지형과 지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백성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철저히 보호되도록 하였다.

먼저 작은 개울이라도 보(洑) 막아 적군이 쉬이 건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농사에 필요한 수량을 확보하였다. 이는 성을 쌓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변방의 경계에 초소를 세우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봉화를 올려 알리도록 하였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주력 부대는 항시 출동할 태세를 유지시켰다.

“반드시 군사들과 백성들을 구하리라!”

4.

서기643년, 정관 17년 계묘에 신라 선덕왕이 당 태종에게 글을 보내 자장을 돌려보내 줄 것을 청하였다.

“자장이 중원으로 간지 여섯 해가 되었소.”

당 태종은 서기 599년에 태어났으니 자장보다 9살 아래다. 27세에 형제를 죽이고 왕권을 잡았다. 그러고 보면 유신보다 4살이 적고, 춘추보다 4살 많았다.

자장을 만나면 대화는 격이 없었고, 그의 해박한 식견과 소탈함에 매료되어 가까이 두고 싶었다.

태종은 선덕왕이 자장을 보내달라는 친서를 받았다. 왕실의 일원이라 타국에 너무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태종이 이를 허락하고 대궐로 불러들여서, 비단 가사 한 벌과 여러 색깔의 비단 500단을 내려주었고 태자도 비단 200단을 내려주었으며, 또 많은 예물을 내려주었다.

자장은 본국에는 아직 불경과 불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어서, 대장경 1부와 여러 번당과 화개 등에 이르기까지 복과 이로움이 될 만한 것을 청하여 모두 실어 왔다.

자장이 돌아와 여왕에게 황룡사에 탑 세울 것을 간했다.

“탑을 세우라니 무슨 연유요?”

“구층탑을 세우면 많은 사철을 채광 할 수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청량산 신인은 황룡사 아래에 사철이 묻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지?”

“소승도 놀랐을 따름이옵니다.”

“하지만 철광만 있으면 무엇 하오? 용출에 필요한 나무가 있어야지…….”

왕이 궐의 천정을 보며 탄식하자, 자장이 아뢰었다.

“나무가 아닌 석탄을 가지고 용출할 수 있사옵니다.”

“그건 수차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하지 않았소?”

“그땐 무연탄으로 시도하여 실패하였지만 연기 나는 유연탄을 쓰면 가하옵니다.”

“연기 나는 석탄은 잘 타지도 않고 열량도 약하지 않소?”

“그러하오나 숯으로 만들면 열량도 높아져 용출도 가하옵나이다.”

“석탄 숯이라? 아무래도 믿기지 아니하오.”

“신인이 방도를 가르쳐 주었사옵나이다.”

“그렇다면 시연을 해보도록 하오.”

“벌써 준비를 시켜 놓았나이다.”

자장은 귀국 후 제일 먼저 석탄 숯을 만들었다. 인근 숯가마에서 유연탄으로 석탄 숯을 만들어 분황사로 옮겼다. 철광과 회도 준비시켰다.

여왕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작은 용광로에 원료를 장전하고 불을 붙이고 풀무를 젓기 시작하였다. 새벽녘이 되어 로의 아랫부분을 뚫으니 달빛을 띤 쇳물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감격했다. 연기 나는 유연탄은 장기 마현에 노천으로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탑을 세워 사철을 캐면 되었다.

극렬히 반대하던 군신들도 시험 용출이 성공하자 말문을 닫았다. 무쇠가, 소나무가 아닌 석탄 숯으로 용출된다면 탑 세울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탑으로 인하여 채광은 지속적으로 이루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득이 생길 일이었다. 무쇠만 있으면 어느 곳에 가든 구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짐의 큰 근심이 날아갔소. 선대가 이곳에 나라를 세운 지 700년이 되었소. 멈추었던 나라의 기운이 이제 다시 살아나게 되었소. 뭘 더 망설이겠소.”

시연에서 무쇠가 용출되자 왕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둘러 서 있던 군신들도 모두 놀랄 뿐이었다(계속). 

안병호 작가 renews@renews.co.kr

<저작권자 © 한국부동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